게시물 번호: 134 
글쓴날: 2002-03-08 15:48:19 
글쓴이: 장여경 
 
  
인터넷에 소란함을 許하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개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가 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선관위의 완고한 해석이 논란을 빚고 있다. 총선시민연대 활동 이후
선거와 인터넷을 두고 또다른 굵직한 논쟁이 터진 것이다. 이것은 '시대에 맞는
선거법 개정'에 대한 논란만은 아니다. 
남한 진보 진영이 논쟁에 참여하는 태도에서는, 기존의 독점 언론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인터넷 언론에 대해, 그들이 기대하고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새 고양된 언론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망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컴퓨터 통신은 세계 진보 진영이 독점 언론의 폐해에 대해 지긋지긋해 하며
독립미디어와 대안미디어 운동의 가능성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절묘하게 등장했다. 그런 연유로 진보 진영은 인터넷을 언론 민주화를 위한
'대안'으로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언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왔다. 이때
인터넷 언론의 탁월함으로 손꼽힌 것은 '민중주의'였다. 

기존의 언론이 편집자의 권위로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해 왔다고 한다면 비위계적
방식의 인터넷에서는 이런 질서가 허용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자신이 기자가 되어 직접 기사를 쓸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의
언론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시민 참여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실험은
인터넷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소박한 민중주의적 노선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진보 진영은 인터넷 언론에 대한 지지를 통해 언론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좋은 소식만을 가지고 왔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진보 진영의 내부 모순에 대한 고발 역시 부쩍 증가한 것이다. 인터넷의 고발이
수구세력에 대한 것일 때는 당연한 지지를 받았지만, 그것이 우리 진보 진영
자신에 대한 것일 때는 '소란'이 벌어지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 논란이다. 

대체로 인터넷에서 이루어진 100인위의 활동은 처음 등장했던 바로 그날부터 계속
견제의 대상이었다. 노골적인 삭제 요구로부터 진보네트워크의 법적 책임을
걱정하는 은근한 압력에 이르기까지 이 활동에 대한 진보 진영 대개의 반응은
불편해 하고 적대시 하는 것이었다. 명분상으로는 운동 진영의 도덕적 명성에
상처를 주고 수구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었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 논란은
우리 운동 진영이 가지고 있던 남성중심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지금은
피해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기꺼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던 (그러나 손꼽히는 정도인) 몇 분의 빛나는 활동으로, 그리고 비교적 빠른
시일내 법적인 판단을 받아 100인위 활동의 무혐의 처리가 확정된 박일문 사건을
통해 논란이 많이 잦아든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타자들은 계속 등장했다. 수년 전의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고발이 줄을 이었다. 잊혀져 가고 있었던 98년의 '실패한 투쟁' -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과 무관심 속에서도 계속된 식당 아주머니들의 투쟁이
{밥·꽃·양} 논란을 통해 인터넷에서 부활했다. 장애인 노동자·실업자에 대한
이중 소외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의 갈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최근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거부감까지 -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진보 진영이 가지고 있던 누추한 가부장성과 앙상한 인권
의식이 스스로 폭로되었다. 
그래서 남한 진보 진영은 내심 인터넷이 불편하다. 물론 자기 주장과 선전, 그리고
상대에 대한 고발의 장으로서 인터넷은 매우 활용도가 높다. 그 이전까지는
민중에게 이렇게 저렴하면서도 파급력이 큰 매체가 주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자기 갈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진보 진영은 불편하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간혹 어떤 글을 삭제해 달라거나 아이피를
추적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호텔롯데 노동조합의 파업
때처럼 노골적인 파업파괴자를 뒤쫓고 정체를 밝히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기치 않은 이런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인터넷이 가지고 온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불편함은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민중적 발화로 인한 것이다. '적'들에 대한 것이건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건 민중의 표현이 폭발하고 있다. 인터넷은, 그 민중주의
때문에 소란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금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대다수의
표현들은 기존의 관점에서 보아 가치가 없거나 불편한 것들일 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표현의 자유'가 본래 "어떠한 표현도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음을 강하게 상기해야 한다. 오랫동안 언론·출판매체의
자유에 국한되어 있었던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의미 역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란 본래 소란한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비판의 칼날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궁극적으로 그 칼날은 우리의 민주주의 운동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란한 인터넷을 사랑한다. 그 소란함이야말로 인터넷이 우리에게
던진 진정한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