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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3027
글쓴날 : 2002-06-06 08:37:28
글쓴이 : 보스코프스키 조회 : 3688
제목: ‘살육 거부’의 역사를 쓰자-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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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

2002년03월27일 제402호 


‘살육 거부’의 역사를 쓰자

애국과 국방 중심의 지배층 시각에서 평화로운 민중들의 의식 성장과정을 주요내용으로

계급사회의 지배체제가 생산·강요하는 허위의식들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유해한 것은 지배층을 위한 대량 살육(이른바 전쟁) 위주로 꾸며낸 ‘제도권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교과서에서나, 시청자들에게 강요하는 텔레비전의 역사 프로그램에서,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강요하는 국경일의 명칭과 내용에서 해당 국가가 이겼다고 보는 전쟁을 우리 모두의 명예로 치켜세우고 자국이 패했다고 보는 전쟁을 수모로 여기는 풍경은 세계 어느 구석에서나 볼 수 있다.

제도권의 역사를 뒤집어보자


사진/ "해치우자"고 소리치며 전선으로 나가는 프랑스 병사를 그린 제1차 세계대전 전시공채 구입 포스터. 대량 살육을 긍정한 역사는 이제 거꾸로 써야 한다.


물론 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국시로 삼는 독일과 같은 고무적인 예들도 있지만, 아직은 예외적인 일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필자로서, 대량 살육을 역사의 주요 내용으로 긍정한 제도권 사학에 대해서 일종의 공동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책임은 무엇보다 반성과 개선에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과연 살육의 예찬이 아닌, 국가에 의해서 악용될 소지가 없는 역사를 우리가 생산해낼 수 있는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국 각급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의 경우에는 ‘애국과 국방 중심’의 역사에서 좀더 평화·민중·문화 중심적인 ‘관용과 공존’의 역사로 무게 중심의 이동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예컨대 단명한 수나라(581∼618)를 고구려의 숙적이나 살수대첩의 패배자로만 그릴 필요가 있을까? 물론 수나라와 고구려 지배층 사이의 충돌이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나라에서 꽃핀 천태종이 대략 그 시기부터 한반도에서도 수용돼 한국 땅에 법화(法花) 신앙의 뿌리를 내린 것을 취급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한국사는 수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대량 살육을 유도하는 데 일조한 ‘걸사표’(乞師表: 수나라의 군대를 보내달라는 부탁 편지)의 저자인 신라 승려 원광(圓光)이나 대량 살육의 승리자 을지문덕 등 살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지배층의 구성원은 역사의 영웅으로 만들면서, 묵묵히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참선과 착한 일을 행하는 법을 가르쳐줬던 백제의 현광(玄光)과 같은 평화로운 민중 승려는 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역사가 학생들에게 어떤 의식을 심어주겠는가?

역사가 취사선택과 해석의 기술인 만큼 지배층을 위한 애국적인 살육보다 민중 사이의 평화로운 의식·신앙의 성숙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택하는 것은 의식 높은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사의 경우, 16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건설·발전·위기의 역사가 대량 살육의 역사면서도 또한 살육 거부의 역사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부자들이 소수였다 해도, 그들은 우민화돼버린 사람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대다수 민중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이었다.

17세기…. 신생 자본주의 입헌국가(네덜란드, 영국)와 절대왕권(프랑스, 스페인) 사이의 무역에서의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 점차 심해져가고 식민지적 약탈의 규모가 차차 거대화된다. 독일에서는 신·구교 양쪽 군주들 간의 싸움이 국제화되어 독일 일부 지역의 인구를 약 절반으로 감소시킨 이른바 30년 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대량 학살이 진행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발전은 유럽 안에서의 국가 폭력과 유럽 밖으로 향한 야만적인 학살·약탈 행위를 배로 증가시킨 셈이다.

야만의 시대를 거부한 사람들

그러나 온갖 폭력의 도가니가 돼버린 17세기 유럽에서, 일체의 폭력을 완강히 거부한 민중들의 종교적 운동이 점차 확산된다. 재침례교(Anabaptism), 퀘이커교(Quaker), 메노교(Mennonites) 등의 일부 민중적 신교 교파들의 신도들은 교수대에 오르면서도 국가적 폭력에의 참가를 절대적으로 거절한다. 점차 피를 더 많이 흘리게 하는 초기 자본주의 세계를 그들은 예수의 사랑으로 정화하려 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유럽의 구대륙에서 불온분자로 낙인찍힌 그들은 이민이라는 신념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북미주로 이민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인디언들을 학살하여 백인이 개척할 수 있는 황무지를 만드는 민병대(militia)에의 참가를 거부하는 비주류 민중 교파 신도들은 보이콧과 구타, 강제 추방 등의 갖가지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그들의 폭력과의 투쟁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결국 자본주의의 국가적 살육을 부정할 수 있는 자유의 하나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18세기…. 인권이라는 용어를 대량으로 유포시킨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서구 역사상 최초의 철저한 징병제를 실시함으로써 커다란 아이러니를 남기고 만다. 신생 부르주아 국가에서는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을 권리를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전의 미국 혁명(1775∼83)의 전개과정에서는 어느 쪽에서든 살인에의 참여를 거부한 비주류 교파 신도들이 지속적인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미국 초기 국회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언급을 헌법의 제2수정 조항에 포함하자는 제안이 기각당하고 만다. 새로 잡혀가는 부르주아 국가의 질서 속에서 양심적 폭력 거부의 위치는 극히 불안하고 좁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민중의 의지는 이어진다.

19세기…. 전 지구의 노예화 프로젝트를 점차 성공적으로 수행해나가는 유럽의 열강들은 19세기 말에 접어들수록 극단적 국수주의·군국주의적 경향을 띤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살육방법들의 발전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들도 더욱 강해진다. 미국의 문호 소로(H. D. Thoreau·1817∼62)도 개인의 영성과 무소유 위주의 새로운 기독교를 지향했던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L. N. Tolstoi·1828∼1910)도 식민지적 약탈과 살육, 군국주의적 애국주의를 비판하고 양심적인 병역 거부를 이상적인 해결 방법으로 생각했다. 부르주아 국가를 부정하거나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무정부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도 전쟁에의 참가를 거부했다. 대량 폭력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과 일체의 폭력을 부정하려는 민중 세력 사이의 전선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20세기…. 폭력 진영과 비폭력 진영이 최초로 전세계적인 규모로 전면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3800만명의 사람들(현재 남한의 총인구 만한 수)을- 자본가와 관료들의 이득을 위해- 온갖 방법으로 죽게 하거나 불구자로 만든 제1차 세계대전 때 입영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은, 모든 참전 국가들의 공적(公敵)이었다. 프랑스 즉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미국에서 감옥의 고초로 죽고, 영국에서 하옥돼 사회에서 생매장당한 그들은 야만의 시대에 야만인이 되기를 거부한 진정한 인간들이었다. 전쟁 히스테리로 정신을 잃은 구미 사회의 밑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생은 결국 민중 투쟁을 위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역사도 인간을 만든다


사진/ 폭력 진영과 비폭력 진영이 전 세계적 규모로 부딪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이다.


1920∼30년대의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1960년대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차별 철폐운동, 그리고 현재의 티베트 독립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중심부·주변부 민중의 비폭력적인 해방운동들은 도덕적인 헤게모니를 착취자나 억압자로부터 빼앗을 수 있었다. 억압체제로서의 대영제국이나 미국의 패권주의, 중국의 국가주의적 유사 사회주의의 폭력적인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1만2천여명의 미국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끌려간 수용소(CPS: Civil Public Service camps)들은 결국 흑인차별 철폐 운동의 온실이 되었다. 1991년의 걸프전쟁 때도 2500명 정도의 미국 군인들이 양심적인 참전 거부의 권리를 행사한 것은 신식민주의적인 자본주의적 폭력과 민중의 비폭력적인 양심의 대립이 아직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유혈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를 다시 전장으로 만들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만큼 역사도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과거 지배층의 대량 살육에 대한 무비판적인 교육만 받은 젊은 사람은 또 다시 살육의 장으로 쉽게 끌려갈 수 있다. 반면 지배층의 폭력과 ‘밑으로부터’의 비폭력적인 해방적 저항이라는 세계 역사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면, 손쉽게 미군의 총알받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 아이를 키우면서 역사를 이야기를 해주는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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