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의견게시판 뉴스클리핑 서명게시판 자료실 English

첫화면 | 인트로화면달기 | 배너와로고달기 | 메일링리스트 | Hot Issue | 운영자


뉴스클리핑
게시판

정보통신상에서의 국가권력과 상업통신망에 의한 검열과 정보통신운동동향에 관련한 모든 뉴스를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누구나 뉴스를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 Free게시판 운영원칙


번호 : 3011
글쓴날 : 2002-05-27 21:21:25
글쓴이 : 보스코프스키 조회 : 4284
제목: 죽음, 올테면 와보라-한겨레 21 358호

Untitled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v3.0">

[ 커버스토리 ]

2001년05월08일 제358호 


죽음, 올테면 와보라

일을 통해 그 그림자에서 탈출했던 두 사람의 색다른 투병 이야기


사진/ 양우성씨는 암과 싸우면서도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강창광 기자)


죽음의 그림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내게!’라는 장탄식은 죽음의 처지에서 보자면 어처구니없는 불평일 뿐이다. 동화 속에서는 착한 주인공만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지만, 현실에서는 그만큼 오래 사는 악한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죽음이라는 물리적 작용과 화학적 변화까지는 어찌하지 못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배낭처럼 들쳐업고, 마치 백패킹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고스락을 향해 삶의 산등성이를 쉬지 않고 타고 오른다.

항암치료를 중단하다

양우성(35)씨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한 벤처 컨설팅 업체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수원대학교 행정학과에서 시간강사를 한다. 그리고 이달 안에 인터넷과 방송사의 콘텐츠를 제작해 배급하는 벤처회사의 대표로 취임할 예정이다. 한 가지 직업에만 매달려서도 언제나 허덕이는 기자가 지난 5월4일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다재다능한 능력이나 무궁무진한 정력을 취재하려는 게 아니었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투병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양씨는 첫눈에 많이 야위어 보였으나, 표정은 차분하면서도 아주 밝았다. “99년 11월 악성 림프종 선고를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때였습니다. 흔히 임파선암이라고 부르는 병인데, 저도 그 이름을 들은 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며칠 목안이 부어오를 때만 해도 감기기운이려니 여겼다고 했다. 동네약국에서 쌍화탕을 사다 먹어도 낫지 않아 동네의원을 20일쯤 다니며 감기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감기가 낫기는커녕 어느새 목 안에 탁구공만한 종양이 자라 음식을 삼킬 수도 없고 숨쉬기까지 힘들어졌다.

서둘러 대형병원을 찾아 정밀진단을 받았다. 임파선암 2기. 병원쪽에서는 임파선암은 한번 생기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지기 때문에 대개 말기가 돼서야 발견되는데, 양씨의 경우 다른 기관에 전이가 안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다행?’ 병원에서야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그도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을 ‘다행’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고 멍하기만 했습니다. 저보다도 가족들이 훨씬 더 놀라더군요. 그래서 전 오히려 내색을 할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목 안의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고 항암치료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는 죽음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고 나면 입 안이 모두 헐어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그나마 먹은 걸 모두 토해냈습니다. 머리카락도 한움큼씩 빠지고요. 인터넷을 통해 이 병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더 낙담하게 되더군요.”

반전의 기회는 사소한 데서 찾아왔다. 병원쪽에서는 항암치료를 6∼8번쯤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한두번 치료를 받는 데도 고통이 너무 컸다. ‘항암치료가 효과가 있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담당 의사는 “네번 치료한 뒤에는 효과에 별 차이가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교과서적 진료”라고 했다. 차이도 없는데 굳이 치료기간을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담당의사에게 네번만 치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는 펄쩍 뛰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한 뒤에야 겨우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정기검진을 중단한 이유


사진/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는 암환자. 호스피스 기관은 전국에 60여곳뿐이다.(박승화 기자)


치료가 끝난 뒤 그에게는 ‘관해’(觀解) 상태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겉보기엔 종양덩어리가 사라졌지만, 혈액 속에는 암찌꺼기가 계속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찌꺼기들이 다시 한데 뭉치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다시 종양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그에게 5년 안에 암이 재발할 확률은 적게는 25%, 많게는 50%나 된다고 했다. 남은 4년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건 심신안정과 금연, 금주, 정기적인 검사일 뿐, 나머지는 운명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즐겁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가장 먼저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되기’에 나섰다. 자신을 대신해 생계 꾸리기에 나선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맡아 했다. 두 아들과는 처음으로 재미있게 맘껏 놀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그는 어느덧 담담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다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고, 발병하기 전에 쌓아왔던 다양한 이력으로 일자리도 찾아냈다. 그가 일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인 데 있다.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습니다. 4년 안에 제가 죽더라도 가족들에게 생활고의 굴레만은 씌우지 않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그는 인생 전부를 건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다. 그는 “원없이 열심히 일하다 내일 당장 암이 재발해도 다시 항암치료를 받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조용히, 인간답게, 삶을 정리할 생각이다.

강병수(40)씨도 일을 통해 죽음을 맞받아친 사람이다. 강씨는 지난 97년 3월 위암 선고를 받았다. 이미 3기 중반이었다. 4월에 수술을 받아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뒤 1년 동안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휴직기간은 겨우 4개월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출근해 일을 해나갔던 것이다.

“저도 다른 암환자와 다르지는 않습니다.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안 죽겠다고 발버둥친다고 해서 죽을 사람이 안 죽을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삶에 대한 체념이었는지 일에 대한 집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일하자’는 생각이 저를 일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정기검진도 수술 2년 뒤부터 중단했다. 컴퓨터 단층촬영에서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종양이 사라졌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가 병원 검진을 중단한 건 몸에서 종양을 없애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받고 살 필요 있습니까?”

“직경 1cm가 안 되는 종양은 단층촬영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암세포가 10만개 이상 뭉쳐야 1cm가 넘는 종양이 된다는 겁니다. 어차피 암이 재발하면 여러 군데로 전이될 수밖에 없고, 그때 가서는 치료방법이 없는데 굳이 스트레스받고 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에 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더이상 자라지 않도록 최소한의 한방치료만 받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강씨는 올 봄에 암 발병 4년을 넘겼다. 처음 직장에 복귀했을 때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다. “저는 평생 암을 몸에 가둬놓고 살아갈 겁니다.” 어쩌면 죽음의 그늘은 그에게 삶의 햇살과 마찬가지로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가는 인생의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글쓰기 답글쓰기 수정하기 지우기
 
홈으로 이전글 목록 다음글
Copylefted by JINBO.NET

첫화면 | 알립니다 | 의견게시판 | 뉴스클리핑 | 서명게시판 | 자료실 | 운영자 | English

정보통신 검열반대 공동행동 * no copyright! just copy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