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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3009
글쓴날 : 2002-05-27 21:14:55
글쓴이 : 보스코프스키 조회 : 4678
제목: 안락사 목소리 커져간다-한겨레 21 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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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

2001년05월08일 제358호 


안락사 목소리 커져간다

네덜란드 이어 스위스·콜롬비아까지 ‘합법화’가세… 세계 각국에서 맹렬한 논쟁


사진/ “인간은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네덜란드 종교인들의 시위.(AP연합)


죽을 권리냐, 생명의 존엄성이냐. 4월10일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뒤 전세계가 죽을 권리를 둘러싼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에 연이어 4월12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소극적 안락사를 포함한 의사윤리지침을 발표함으로써 논란은 국내로 이어졌다. 소극적 안락사란 생명보조장치에 의존하는 말기환자의 진료를 중단함으로써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좀더 인간적인 죽음을 맞도록 돕는 것이다. 회복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독극물이나 가스를 투여해 죽음을 빨리 맞도록 도와주는 적극적 안락사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의사협회가 새로 마련한 의사윤리지침 30조2항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진료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때 의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소극적 안락사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72년부터 안락사 공론화한 네덜란드

의협의 윤리지침 개정 발표가 난 뒤 종교계의 반발이 곧바로 터져나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윤리지침 개정 발표 다음날인 4월13일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인간의 판단으로 생명을 단축시킬 권한이 없다”며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윤리지침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종교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반면, 시민사회의 입장은 찬반으로 갈라졌다. 찬성론자들은 과도한 생명연장 시술이 환자의 고통을 늘릴 뿐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인간적인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에 합치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의료보장제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에서 안락사의 허용이 빈곤층을 원하지 않는 죽음으로 내몰 것으로 우려한다.

정부도 의협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보건복지부가 새로운 윤리지침이 실정법과 배치된다고 보고 의사협회에 해당부분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현행법은 어떤 형태의 안락사도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논란이 가열되자 의협도 한발 물러섰다. 의사 윤리지침을 원안대로 시행하되, 새로 배포될 윤리지침에 ‘실정법 준수가 우선’이라는 설명문을 첨부하기로 한 것이다. 4월30일 의협의 정기대의원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성사되지 않아 윤리지침의 공포는 미루어졌지만 여전히 논쟁의 불씨는 살아 있다.

최근 의협의 의사지침 개정을 둘러싸고 한국사회의 안락사 논쟁이 막 시작된 반면 외국의 안락사 논쟁은 뿌리가 깊다. 안락사 합법화를 가장 앞장서 이끌어온 네덜란드의 경우 1972년 일어난 한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가 공론화되었다. 의사 게르트 루이나 포스트마르가 중풍환자인 그의 어머니에게 다량의 모르핀을 주사해 안락사시킨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이 의사에게 구류 1주일과 집행유예 1년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안락사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상징하는 판례였다. 이어 1984년부터 네덜란드 의사들은 안락사에 관한 모든 행위들을 기록하고 보고하면 면책특권을 부여받았다. 단지 ‘네덜란드 왕립의사회’가 제안한 안락사 기준에 따랐는지 여부만을 경찰과 변호사에게 조사받으면 처벌받지 않게 된 것이다.

안락사 반대하는 ‘생명선언증’


사진/ 안락사 합법화안을 통과시키는 네덜란드 상원. 이미 해마다 5천건 이상 안락사가 이뤄져온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AP연합)


95년에는 회복 불가능한 뇌-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소녀를 가족과 다른 의사와의 협의만으로 안락사시킨 의사 게라르트 카다지크에게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환자 자신의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뤄진 안락사에 대한 사실상의 묵인이었다. 행정규칙을 통해 사실상 안락사를 허용해오던 네덜란드는 올 4월10일 마침내 안락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해마다 5천건 이상 안락사가 이뤄져온 네덜란드의 현실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에서도 반발이 없지 않았다. 안락사 합법화안이 최종 통과되던 4월10일 네덜란드 의회 건물 주변에서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찬송가를 부르면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일부 기독교계 학교는 수업을 취소하고 학생들에게 시위 참가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미 안락사의 합법화가 진행된 90년대 말부터 이른바 ‘생명선언증’ 갖고 다니기 운동도 활발히 벌어져온 터였다. 생명선언증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안락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뜻을 밝히는 문서다. 이 증서에는 “나는 생명을 끝내는 어떤 의학적 조처도 원하지 않으며 인간은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로마교황청과 각국의 우려도 이어졌다. 로마교황청은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의 사설을 통해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를 공격했다.

안락사 합법화 움직임은 미국의 오리건주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활발히 진행돼왔다. 오리건주의 존엄사법은 ‘죽음의 권리’라는 단체가 앞장서서 입법청원 운동을 펼쳐 94년 11월 통과되었다. 주의회의 다수파인 공화당이 이 법의 폐기안을 상정했지만 주민투표에서 60%의 반대로 폐기안이 부결되었다. 3년 동안의 논란 끝에 존엄사법은 97년 10월 결국 발효되었다. 이 법은 말기환자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과량 복용시 치명적인 의약품을 의사의 협조 아래 대량으로 처방받아 스스로의 손으로 복용하는 ‘안락자살’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극약을 투여하는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안락사와는 다르다. 존엄사법의 통과에 이어 99년 9월 한편의 비디오테이프가 미국 전역을 안락사 논쟁으로 들끓게 했다. 주인공은 정신병리학자 잭 케보키언 박사였다. 케보키언은 미시간주에서 루게릭병 말기 환자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이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를 통해 내보냈다. 결국 그는 2급 살인죄로 10∼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죽음의 의사”라고 불리는 그를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글라이츠만 재단이 수여하는 인도주의상을 받은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한편 미국에서는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안락사 합법화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는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락사법이 결국 치료비가 많이 드는 중증 장애인이나 영세민, 난치병 환자를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무더기로 죽게 만들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이런 영향으로 오리건주를 제외한 미국의 많은 주정부들은 생명보조 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만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안락사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뉴욕, 워싱턴,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에는 안락사 금지법위헌 제청이 접수된 상태다.

프랑스·독일은 뇌사조차 인정안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96년 노던 테리터리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됐다. 하지만 채 6개월도 안 돼 연방 상원의원이 안락사 금지법을 통과시켜 노던 테리터리주의 안락사법은 폐기되었다. 지난 5월 대만 의회 입법원은 아시아 최초로 말기 환자에게 생명연장 의료처치를 거부할 권리를 부여하는 안락사 법안을 통과시켰다. ‘안락하고 평화로운(安樂) 치료에 관한 법’이란 명칭의 이 법안은 행정원의 승인을 받으면 발효된다. 말기 환자가 심폐기능 소생장치와 같은 생명연장 보조 시술을 받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을 의미한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뇌사조차 인정하지 않는 형편이다. 프랑스의 경우 뇌사 상태라고 하더라도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한 생존 상태로 간주한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정도다. 독일은 형법으로 ‘어떤 이유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규정해 안락사를 불법화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장애를 가진 10만여명의 사람들을 안락사해 생체실험에 이용했던 뼈아픈 기억이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정서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과도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서 말기 환자의 고통을 끝까지 지켜주는 호스피스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두 나라뿐 아니라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아직 많은 나라들에서 안락사는 불법화돼 있다. 하지만 행복추구권과 존엄한 최후를 맞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각 나라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에 이어 벨기에, 스위스 같은 유럽 국가와 남미의 콜롬비아까지 안락사 합법화에 가세할 전망이다(참고 사이트 ‘Euthanasia’:my.dreamwiz.com/belle125).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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