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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3007
글쓴날 : 2002-05-27 21:09:50
글쓴이 : 보스코프스키 조회 : 8152
제목: 죽을 권리를 달라-한겨레 21 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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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

2001년05월08일 제358호 


“죽을 권리를 달라”

살아있기를 무작정 강요하는 사회,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는 사회



김희준(27·가명)씨는 에이즈 환자다.

5월3일 저녁 서울 인사동 한 전통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 김씨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해 2월 건강이 갑자기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고, 그를 돌보던 수녀는 이미 그의 영정사진까지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보름 만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되살아남은 처음부터 ‘부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락사, 꼬리내린 의협

“응급실에 처음 옮겨진 뒤 열흘 넘게 병실로 옮기지 못했어요. 입원비도 보증인도 없었으니까요. 어렵게 다른 감염인이 보증을 선 뒤에야 병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사회적 편견까지 겹치니 정말 죽고만 싶더군요.” 김씨는 “언제 다시 때가 올지 모르겠지만 이젠 죽는 것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게 훨씬 두렵다”며 “그때가 되면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가 언젠가 다시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또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또 김씨가 만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한다면, 그의 죽음은 자살일까 아니면 사회적 타살일까. 이런 질문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현안이 된 안락사 논쟁에 비춰볼 때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대한의사협회가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 조처에 힘입어 지난 4월12일 의사윤리지침에 소극적 안락사(말기환자에 대한 진료중단) 허용 규정을 포함하기로 할 때만 해도, 의협은 여러 합리적 이유를 들이대며 매우 의욕에 차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논쟁은 우리 사회가 ‘생명의 윤리’에 대해 얼마나 강고한 고정관념을 고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돼가고 있다.

의협이 내부 사정으로 윤리지침 개정안 자체를 상정조차 하지 못했지만, 개정안에는 이미 ‘실정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단서조항을 넣어놓은 상태였다. 우리 실정법은 소극적 안락사도 형법상 촉탁살인죄 혹은 자살관여죄에 해당한다는 복지부의 유권해석이 이미 있었기에, 이 단서조항은 법개정이 없는 한 소극적 안락사를 포기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눈여겨볼 사실 하나는 의협의 안락사 허용 규정 포함 방침에 대한 사회적 반대압력이 그리 거세거나 직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락사에 대해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종교계에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판단으로 단축시킬 권한이 없다”며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안락사는 살인행위”라고 적시하고 나섰고, 한국기독교생명윤리위원회도 “경제적 비용절감을 이유로 환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의료윤리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일부 가톨릭계 등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찬성 의견을 개진하는 등 종교계 내부에서조차 찬반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더욱이 안락사 문제와 관련있는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소극적 안락사에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 등이 최근 인터넷국민제안센터인 ‘보트코리아’와 함께 안락사 문제와 관련있는 의대·간호대 및 법대 교수, 변호사 등 1067명을 대상으로 전자우편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전체의 82.6%인 881명이 안락사에 찬성한 것이다. 특히 조사자 가운데 15.9%(170명)는 치유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약물 등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동의했다. 겉으로만 봐선 의협이 심각하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던 셈이다.

호흡기를 떼어달라는 할머니…


사진/ 말기 암환자의 쓸쓸한 뒷모습. 살아있기를 강요하는 사회에는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외면과 방치가 동전의 이면처럼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의협을 뒷걸음치게 만들었을까. 익명의 설문조사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성이 높게 나타나면서도 집단의 의사표시에서는 두루뭉수리한 원론적 수준의 논평이 주를 이룬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어쩌면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말하는 걸 두려워 하는 우리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언뜻 안락사 논쟁이 격렬한 갈등을 빚어낸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뚜렷한 쟁점과 날카로운 논리를 찾아볼 수 없고, 공허한 열기만 가득했던 현상과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울 ㅅ병원 내과 전문의 유아무개(38) 박사는 얼마 전 아침 회진시간에 중환자실에서 낯익은 할머니를 한분 만났다. 몇달 전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항암치료를 한 차례 받았다가 부작용이 심하고 효과도 없어 치료를 포기한 채 퇴원했었다. 할머니는 항암치료가 두려웠던 걸까. “퇴원 뒤에도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당부했지만, 할머니는 숨쉬기가 어려워질 때가 돼서야 가족들 손에 들려 다시 병원에 나타났다.

며칠이 지나도록 할머니의 병세는 그대로다. 할머니는 인공호흡기가 힘이 드는지 그를 볼 때면 자꾸 호흡기를 떼달라고 손짓을 한다. 물론 호흡기를 떼내면 할머니는 곧 숨을 거둘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두고 가족들은 그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말만 자꾸 되풀이한다. 더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꼭 그만큼만 ‘최선’을 당부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호흡기를 계속 달고 있어도 머지않아 합병증으로 돌아가실 거다. 아들은 경제적으로 별로 여유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할머니가 임종한 뒤 전세를 월세로 옮겨야 할지 모른다. 할머니에게 ‘최선’은 무엇일까. 그리고 아들에게 ‘최선’은 또 무엇일까. 모르겠다.” 유 박사는 “어쩌면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는 게 모두에게 최선이 아니겠느냐”면서도 “사람 살리라는 의사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유 박사의 이런 고민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다만 겉으로 나타내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그 ‘말못함’이 이 병원 중환자실에 흐르는 환자와 환자가족, 의료진 사이에 팽팽히 흐르는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사람들에게 죽음 앞에서 자꾸만 죽음 자체를 외면하는 딴청을 피우도록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죽음에 대한 이런 ‘비켜가기’ 문화는 죽음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그건 때로 ‘촌극’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89년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김아무개(당시 59·강원도 고성)씨는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했다. 항암 치료를 받던 중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자 담당 의사는 가족들에게 “집으로 모시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의사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91년, 난도질당했던 ‘죽음의 의미’


사진/ 자살은 우리 사회에서 여러 죽음 가운데서도 가장 터부시되는 죽음의 한 형태다. 지난해 12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만난 사람의 자살을 도와줬다는 혐의로 붙잡힌 윤아무개(왼쪽)씨가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응급차를 타고 강원도 집으로 출발한 때가 자정 무렵. 집까지 가는 서너 시간 동안 구급차에 같이 탄 의료진은 심장 마사지를 계속 했고, 산소마스크를 떼지 않았다. 새벽 4시쯤 김씨가 집으로 옮겨진 뒤에야 의료진이 “이제 산소마스크를 떼겠다”라며 임종을 알렸고, 그 순간 비로소 곡이 터져나왔다. 나중에 의료진은 김씨의 아들에게 “이미 병원을 출발하기 직전인 정오 무렵 운명하셨다”고 알려줬다. 구급차 안에서 벌어진 의료행위는 일종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김씨의 아들은 “응급차에 같이 탄 사람들이 임종하신 것을 눈치채지 못했겠느냐”며 “집에서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알면서도 모른 체 한 것”이라고 돌이켰다. 여태껏 김씨는 생전에 그를 알았던 주위 사람들에게 “새벽에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알려져 있다. 너무나 한국적인 ‘학생부군신위’인 셈이다.

지난 91년 이른바 ‘죽음의 정국’에 대해 우리 사회 주류여론이 보여준 태도는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의 죽음의 의미를 얼마나 철저히 난도질하고 부관참시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해 <조선일보> 5월5일치에는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문이 실렸다.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시체선호증이다… 당신들은 지금 자살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는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그는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경찰 타살 이후 잇따르던 젊은이들의 자살과 그들에 대한 애도를 겨냥해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는 독설을 쏴붙였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의 ‘숭고한’ 생명 예찬은 엉뚱하게도 유서대필 정국을 낳았다. 그리고 오히려 애먼 젊은이 한 사람이 ‘죽음을 사주한’ 악한으로 둔갑돼 사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자살은 우리 사회의 여러 죽음 유형 가운데서도 가장 터부시된다. 자살은 자신의 생명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인 만큼, 죽음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는 사회에 가장 큰 부담을 안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살할 용기로 무얼 못하냐’는 말이 인간승리의 신화에 빠질 수 없는 소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사회적 집단정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폐쇄된 자살사이트 ‘plow2002’의 방명록에 올라온 충고의 글들은 이런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살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세기말),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라”(어떤 중학생), “자살하려면 차라리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보세요. 죽을 각오를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용기없는 인간들!”(자살)

“자살하는 사람만 나무라지 말라”


사진/ 불우한 이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봐줄 사회적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한 호스피스 병동.(박승화 기자)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유경험자의 항변도 없지는 않다. “죽음에 대한 남의 생각을 비하하진 마세요. 저도 그저 홧김에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당신이 보기에 합당하든 안 하든 그 상황과 고통을 모른다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집단적인 ‘충고’ 앞에서 경험자의 항변은 쉽게 묻히고 만다. 정신과 의사 김병후씨는 “자살의 기본 심리는 죽음에 대한 용기라기 보다는 현실 회피”라며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꾸준한 대화와 위로”라고 지적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24.9%가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 또 90년대 초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자살사망률은 98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자살사망률의 증가속도(6.43%)는 가장 빠르다. 자살은 이미 엄연한 사회현상의 하나인데, 그 원인은 자살하는 사람에게로만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웹진 ‘컬티즌’(www.cultizen.co.kr)에 기고한 글에서 “누군가 죽을 작정을 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삶의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의 욕망을 죽음의 의지가 압도한 결과”라며 “자살을 양산하는 절망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어느 면에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자살 권하는 사회는 내버려둔 채 ‘자살하는 사람들’만 나무라는 건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살아 있기를 요구하는 사회가 죽어가는 사람을 무관심 속에 방치하는 것도 대단한 역설이다. 독거노인 우아무개(78·서울시 성동구 금호동2가)씨는 폐암 말기다. 지난 99년 신장암 수술을 받고 1년 동안 항암치료도 받았으나, 두달 전 기침을 자주해 병원을 찾아가본 결과 이미 암종양이 폐로 전이된 상태였다. 우씨는 지금 달동네 단칸방에서 혼자 지낸다. 독거노인 도우미 고아무개(45)씨가 일주일에 두번씩 들러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구청에서 하루에 한번씩 도시락을 배달해오고 있지만, 그는 극심한 말기암의 고통을 진통제도 없이 참아내며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무관심에 방치된 ‘죽어가는 사람들’

도우미 고씨는 “중환자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있어야 입원할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의료보호 대상자이면서도 간병인을 쓸 돈이 없어 입원을 못하고 있다”며 “이런 노인들한테서는 간병인 비용을 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고씨는 또 “할아버지는 나마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쓸쓸히 임종할 가능성이 높다”며 “할아버지가 편안한 곳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씁쓸히 말했다.

지난 5월4일 서울 성북구 월곡동 성가복지병원 7층 호스피스 병동 ‘임종의 방’에서는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저는 평생 짐을 벗으며….” 강원도 양구에서 올라온 김아무개(68·여)씨는 비교적 평안한 표정으로 가끔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김씨는 잘 못하면 혼자 집에서 임종을 맞을 뻔했다가 운좋게 무료로 운영되는 성가복지 호스피스 병동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됐다. 그러나 김씨의 사례는 아주 운좋은 경우일 뿐이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을 받는 독거노인은 전국적으로 13만명에 이르지만, 그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봐줄 사회적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죽음은 순전히 자연사일까.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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