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민경배, 조회: 465, 줄수: 11 
네티즌은 없다 (주간 iWeekly, 제86호, 2002. 1)  
"네티즌은 없다!"
다소 도발적인 이 선언에 분명 많은 이들은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언론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연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네티즌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고 있는데, 그리고 국내 네티즌 인구가 드디어 국민
과반수를 넘은 2천 5백만에 육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게 바로 엊그제 일인데
느닷없이 네티즌이 없다니 무슨 소린가? 하지만 한국 사회서 "이제 더 이상
네티즌은 없다"고 감히 단언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근거 때문이다.

첫째,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네티즌이란 특화된 명칭은 무의미하다. 이미 네티즌이란 사람들의 범주는 '국민',
혹은 '대중' 등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범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즉 네티즌이란 명칭으로 묶어낼 수 있는 별도의 인구집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네티즌의 여론에
따르면....", "대다수 네티즌들의 의견은...." 하는 식으로 네티즌의 입을 파는
것은 한편으로는 국민 혹은 대중들의 여론을 네티즌이라는 특정 집단의 의견으로
폄하시키는 효과를 낳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네티즌으로 지칭되는 이들에게
허상뿐인 특권 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이제 네티즌은 단지 개념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

둘째, 네티즌이란 개념에 담겨 있는 '시민적' 가치가 빛을 바랜 지금의 인터넷
문화 속에서 더 이상 이 명칭은 유효하지 않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네티즌은 본래
인터넷을 뜻하는 '네트'(Net)와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이때의 '시민'이란 근대적 자유와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현하는 시민사회의
주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네티즌이란 단어 속에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네트
시민사회의 시민적 가치 실현을 담당하는 '인터넷 시민'이란 사회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러한 시민적 가치가
과연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시장판으로 전락해버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민'이 아닌 '소비자'에 머물러 있으며, 성찰적이고 심미적인
정보의 생산자보다는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욕망의 배설자만 횡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네티즌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저 단순한 인터넷
이용자(User)만이 난무할 뿐이다.

셋째, 네트 시민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의 압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상업화로 치닫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자본에 의한 이윤의 논리는 정보의
공유와 나눔이라는 인터넷의 기본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으며, 윤리와 질서라는
명분을 앞세운 국가의 인터넷에 대한 개입과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자칫 개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통제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인터넷 시민들이 설 땅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네티즌은
없다. 허용된 것 이외에는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이들은 더 이상 네티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사이버스페이스는 전자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네트
시민사회이다. 이제 시민사회는 개인이 몸담고 있는 고착된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가 접속해 있는 네트워크의 어디인가에서도 형성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희노애락을 나누며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시민사회가 바로 사이버스페이스인 것이다. 이는 결국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중의 시민사회, 즉 전통적 의미의 오프라인
시민사회와 네트 시민사회를 동시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는 네트 시민사회를 통해 오프라인 세계의 위계적 권력관계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대안적인 삶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네티즌이 없는 지금의
사이버스페이스는 단순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이거나 시장판 혹은 놀이터로 전락해
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또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열기를 자랑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사이버스페이스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활용하는데 그쳐도 괜찮은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