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열과 언론매체 (월간 인물과 사상, 2002. 2월호)  
1. 로맨스 그리고 배반 

언론개혁을 열망하는 목소리들이 마침내 대중적 공감대 속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는 뭐니뭐니 해도 단연 인터넷이다. <조선일보>를 겨냥한 삐딱한
딴지걸기로 첫 모습을 드러낸 <딴지일보>(www.ddanzi.com)는 인터넷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출범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는 창간 1년여만에 영향력 있는
대안언론의 대명사로 뿌리를 내렸다. 또한 <조선일보>라는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에
대한 정면 도발을 감행한 안티조선 사이트 <우리모두>(www.urimodu.com)의
문제제기는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www.antichosun.or.kr)의 결성과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선언'으로 이어졌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기껏 선구적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의
고민에 그쳐왔던 언론개혁 문제가 인터넷을 통해 비로소 대중적 현안으로 대두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인터넷과 기성 언론은 서로간에 애증이 교차하는 미묘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는 달콤한 로맨스로 시작된 이들의 첫 만남을 아직 기억한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식의 정보통신 부국론과 미래
지식정보사회에 대한 장미빛 환상들이 연일 신문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 여년 전, 이렇듯 기성 언론은 인터넷의 든든한
후견인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열풍을 자랑하는 한국의
정보화는 바로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기성 언론이 앞장서 "인터넷 만세!"를
외치고, 여기에 고무된 대중들이 펜티엄 컴퓨터로 무장한 채 정보의 바다를 항해할
ADSL호에 앞다퉈 몸을 실으면서 디지털 코리아 신화의 막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로맨스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기성 언론의 선창에 맞춰 "인터넷
만세!"를 따라 부르며 번쩍 들어 올렸던 대중들의 두 손이 아직 다 내려오기도
전에 언론은 느닷없이 배반의 등을 돌려 '인터넷 마녀사냥'에 나섰다. 자살사이트,
엽기사이트, 자퇴사이트, 조폭사이트 등이 신문 사회면의 새로운 레퍼터리로
잇달아 등장하면서 이른바 '위험한 인터넷론'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나갔다.
'정보의 바다'에 대한 찬사는 '음란의 바다'라는 저주로 바뀌었고, 환상적인
디지토피아(digital + utopia)의 복음은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레퀴엠으로 돌변해
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이 단순한 통신 수단이나 정보의 바다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하나의 독자적인 매체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인터넷이 더 이상 언론의 취재 대상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언론의 강력한
경쟁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그 순간, 기성 언론은 매몰차게 인터넷과의 로맨스에
종지부를 찍어버리고 말았다. 

2. 매체의 권력 이동과 충돌 

분명 인터넷은 전혀 새로운 매체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어떠한 매체도
①비동시적이고 ②쌍방향적인 방식으로 ③시공간을 초월하여 ④익명성이 유지되는
⑤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최초의 매체이다. 그리고
매체로서의 인터넷은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에 두 가지 새로운 충돌을 일으킨다.


그 첫 번째는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인터넷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기성
언론과의 충돌이다. 인터넷의 출현은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매체를 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대중매체가 지배계급의 손에 독점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은 지배계급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인터넷은 지금까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힘없는 일반 대중들이 기성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전지구적 차원으로
전파하고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한 개개의 네티즌들은 스스로가 정보의 생산자임과 동시에 송신자이며 자기
정보의 관리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홈페이지, 웹진, 인터넷 언론,
전자 게시판 등은 그 각각이 기성 매체들에 대한 대안 매체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공론은 상업적·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나 기성 매체가
보도하기 꺼려하는 금기 사안조차도 당당하게 폭로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둘 수
있게 해준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권력 이동(power shift)'이 인터넷을 통한
매체 권력의 대 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닐 듯 싶다. 

인터넷이란 매체가 불러일으킨 두 번째 충돌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과의 충돌이다. 사실 기존 오프라인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란 곧
언론의 편집권과 동일한 개념이었다. 즉 편집권자의 엄격한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거친 정보만이 정당한 '표현'으로 인정받고
유통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란 매체에서 게이트키핑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심지어 유해하다는 이유로 기존 오프라인 매체로부터 철저하게
걸러졌던 음란물이나 폭력물에게까지도 발언권과 유통 수단을 제공해 준다. 그
결과 근대적 시민권의 핵심 개념으로 인정되어 왔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새롭게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바로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규제의 문제가 그것이다. 

실제로 지난 1996년 미국의 통신품위법 논쟁,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 문제 속에는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중심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즉 정부를 비롯하여 학부모 단체나 종교 단체들은
인터넷 공간 안의 걸러지지 않은 표현물들로 인해 발생하는 무질서와 각종
사회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이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한쪽 진영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에 시민단체와 대다수 네티즌들은 이와 같은 규제론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인터넷을 검열·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반대하면서
대립 진영을 구축한 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같은 양상은 냉전
시대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진보 대 보수의 갈등구조가
와해된 후, 정보사회에서의 진보 대 보수 진영을 가르는 새로운 대립축으로까지
대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3. 이보다 더 고약할 수 없는 인터넷 검열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새로운 매체를 사회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일등공신은
늘 음란물이었다.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옐로우 저널리즘'이라 불린 선정적
기사는 신문 보급률을 높이는 첨병이었다. 사진이 발명되자 누드 사진이
상업화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며, 비디오 테이프도 포르노물을 담은
후에야 각 가정으로 신속하게 파고들 수 있었다.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을 빠르고 재미있게 배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음란 사이트를 서핑하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길 정도로 인터넷의 보급과 음란물은 밀접한 공생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 규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명분이 다름 아닌 음란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인터넷 보급의 일등공신이었던 음란물에게 이제 인터넷
규제의 명분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음란물의 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모든 매체의 경우 음란물로부터 시작된 규제와
검열이 결국 매체 전체의 규제와 검열로 확장되어 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인터넷에 대한 규제와 검열은 다른 그 어떤 매체보다도 훨씬 더 고약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첫째, 다른 매체와 달리 인터넷에서는 현실적으로
사전심의 보다는 사후심의 위주로 검열이 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후심의
성격의 검열은 정보의 흐름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특정
집단(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집단)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선별적이고 집중적인
검열을 통해 정치적 통제를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오히려 더 크다고 하겠다.
정보의 검열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보에 대한 취사선택의 가능성을 제한하여,
개인의 일상의 삶과 의식을 지배세력의 의도에 맞게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치적 무관심이나
무력감을 만연시켜서 토크빌이 말한 것과 같은 이른바 '부드러운 전제정치'를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둘째, 정보제공자가 자신의 사이트에 스스로 등급을 매기도록 되어있는 현행
내용등급제란 것이 표면적으로는 타율이 아닌 자율등급제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제공자의 사전 자기 검열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후 검열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중적인 검열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검열의 강도가 더 강화된
방식이라고 하겠다. 특히 자기 검열은 개개인의 모든 일상적 삶이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해 속속들이 관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팬옵티콘' 효과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 지배엘리트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고도의 통제 장치라 하겠다. 

셋째, 인터넷에 대한 규제와 검열은 그 대상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제와 검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감시의
시선은 올드 미디어에서와 같은 표현물에 그치지 않고 채팅방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곳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 게시되는 텍스트들은 단순한
표현물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구체적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규제와 검열은 결국 매체에 대한 통제를 넘어 전자적으로 형성된 사이버
시민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의미한다. 

이처럼 음란물 규제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내용등급제는 인터넷이라는 또 하나의
매체를 말살할 뿐 아니라 나아가 전자적으로 형성된 사이버 시민사회의
식민지화까지 초래할 것이니, 분명 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