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혁명의 참 의미/ 노혜경

이번 민주당 국민경선에 불어닥친 정치혁명의 진원이 인터넷이라는 진단은 이제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이 혁명의 열기가 국민경선뿐 아니라 장차 대선국면에서도
미칠 것을 예감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회창씨에게 인터넷 마인드를 갖추라는
충고를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저 인터넷 마인드라는 말을 들으면서 헛웃음이 나는 것은 아마 나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저분들은 인터넷이 무엇이라 생각하길래,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하듯이 인터넷 마인드를 가지라고 충고하는 것일까? 이회창씨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인터넷 마인드란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마인드'라는 말을 사용하는 한,
그들은 6월 항쟁에서의 넥타이부대에 필적할 만한 `개미군단' 네티즌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혁명은 인터넷 인프라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네티즌이 된다는 것은 인터넷상의 게임에 중독되거나 포르노 사이트를 전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넷과 시티즌의 합성어인 말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네티즌이란 인터넷을 통하여 “국민으로서의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개체로서의 자기를 자각한” 사람들의 별칭이다. 쌍방향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징을
상명하달적 권위주의로부터의 탈출구로 삼으며, 억눌렸던 자아의 분출구로
익명성을 활용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네티즌이다.


이런 혁명을 가능하게 한 우리나라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을 나는 소위
`쟁점토론방'과 `자유게시판' 문화라고 생각한다. 네티즌 혁명의 참된 의미는 바로
말의 혁명이다. 거의 모든 홈페이지마다 있는 게시판에 하루에도 수천만건씩
올라오는 그 많은 글들의 생산자로서 네티즌들은 자기 말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 혁명은 크게 보아 세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엄숙주의 언어독점세력을
항해 딴지일보식 똥침 놓기를 하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하위문화적 화법의, 다시
말해 욕설언어의 확산이다. 한 번도 말하기의 갈증을 느껴본 일이 없이 기존의
언어질서 내에서 충분히 자유웠던 사람들, 곧 기득권층의 사람들로서는 굳이
속어·비어에 욕설까지 동원해야만 직성이 풀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 `엽기
김대중' 음성파일의 빠른 확산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화끈한 욕설 한 마디가
심정적 진실에 가까운 것은 우리 모두가 체험한 바다. 천박하고 구체적인
일상어법의 자유로운 사용은 네티즌들을 엄숙하고 권위적인 지배계층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용을 한다. 

둘째, 게시판 기능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댓글 달기를 통한 대등한 토론이다.
게시판 문화는 자신의 의사를 언어를 통해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그가 지닌 어떤 기득권도 그의 명예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우논객들이 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을 빙자하여 게시판을
닫아버린 이유가 사실은 토론에서의 도망침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미 네티즌들은
안다. 

네티즌 혁명의 세번째 방향이자 마지막 단계는 토론의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
그리고 말을 주고 받음을 통해 네티즌이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하게 실현하는
단계이다. 그것은 넷상의 개인으로 독립한 시민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봉건적인 패거리의식에서 독립한 개인으로, 그리하여 타자와의
연대로 이어지는 세상은 그 이념이 어떤 쪽에 있든 성숙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변화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것이 네티즌 혁명의 참된
의미이다. 

노혜경/ 시인·부산 외국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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