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길라잡이 등록 2002.03.18(월) 18:16 
 

전자민주주의와 대선/ 성동규

1992년은 1987년에 있었던 직선제 개헌 이후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해였다. 당시 1월5일치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는 지금 생각해도 가히 여론 왜곡
기사의 결정판이었다. 이 기사는 “노 대통령 대권후보 결심 굳혀/김 대표 사실상
내정”이라고 뽑은 이 기사는 대부분의 내용이 “관측되고 있다”, “주목되고
있다”, 예측되고 있다” 등과 같은 추측성 표현 일색이었는데도, 마치 노
대통령이 당시 김영삼 대표를 민자당 대선 후보로 결정한 것처럼 단정짓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집요한 여론몰이를 벌여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를 관철시켰다. 
그 당시를 생각하며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만약 10년만 일찍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등장하여 당시의 권력과 제도언론의 행로를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권력과 언론의 음모적 담합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밀실야합적인 그들만의
후보결정과정을 네티즌들이 그냥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가
작성했던 허위보도에 가까운 추측성 기사를 네티즌들이 그냥 무기력하게
일방적으로 믿거나 지나치는 일은 더욱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결과는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100평이 넘는 호화빌라를 3채나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이를 비난하는 성난 목소리에서부터 빌라의 소유주에 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온갖 내용들이 한나라당과 언론사의 인터넷 게시판 등을 장식했고,
이는 결국 이 총재가 신속하게(?) 사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지난 10일
울산의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투표과정에서 부정하게 돈과 향응을 베풀던 모습이
한 인터넷신문에 보도된 이후 관련 후보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대다수 나라들은 지금까지 산업사회에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제도로서 대의제를 채택하여 왔다. 이 제도는 나름대로
대립관계에 있는 사회세력이 타협할 수 있도록 조정자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신문과 방송 등 각종 언론은 사회감시기능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지식 및
정보가 산업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사회구성원들의 교육수준과 정치적 판단력이
높아진 지금 상황에서는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결정과정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제는 대의제 민주주의 대신 전자민주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전자민주주의 아래서 사회구성원들의 참여와
감시기능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그 결과 인터넷이라는 전자정보공간에는 그동안
감추어졌던 것이 드러나고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함께
공통의 문제를 관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 대통령이라는 무소불위의
자리에 있었는데도 클린턴의 성추문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낱낱이 알려졌으며,
현행 입시제도 아래서 일방적으로 `0교시 수업'을 강요당했던 고등학생들은
가상공간에서 이 제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현실세계로 나와 제도의 개선을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성정치인들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참여와 감시를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이를 일시적
현상쯤으로만 치부하고 자신의 권력만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는 이전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기존의 제도권 언론이 해내지 못한 권력 감시의 기능을 행하는 네티즌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행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위해 인터넷과
인터넷언론, 그리고 이 가상공간의 주체인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들게 된다. 더는
과거의 구태와 부패를 숨길 곳이 없다는 것, 대통령 후보들은 반드시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동규/중앙대 신문방송학과교수·dksung@cau.ac.kr

http://www.hani.co.kr/section-001055000/2002/03/0010550002002031818168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