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유해매체' 정부의 두잣대

출처 : 한겨레신문 2001년 12월 24일자
 
성인용 사이트의 회원 가입을 권하는 전자우편이 초등학생에게까지 마구 뿌려지고
있다. 인터넷에 올려진 전자우편 주소를 모아 사용하다 보니, 미성년자 구분 없이
마구 보내지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조사에 나서는 것조차 꺼린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반 관계자는 “수사권과 법 적용의 한계 때문에 조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정통부는 잘 몰라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도 손을 놓고 있다. 윤리위 관계자는
“전자우편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성인용 사이트 가입을 권해도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나라에다 서버를 두고 전자우편을 보내면, 발신자를 찾아내도 처벌할 수
없다”며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추진하고 있다. 또 윤리위를
통해 일정 등급 이상의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정부가 앞장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기술을 개발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청소년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음란물 사이트 가입을 권하는 행위를 막을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와 내용등급제 시행은 그 다음이다. 성인용 사이트 가입을
권하는 전자우편의 경우, `순진한' 청소년들을 음란물로 유도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전장우편 프로그램의 미리보기 기능을 설정해 놓으면, 전자우편의 제목만 선택해도
내용이 보인다. 성인용 사이트 가입을 권하는 전자우편을 받은 미성년자의 경우,
제목을 클릭하는 것으로 이미 음란물에 노출되는 셈이다. 이런 전자우편 중에는
성행위 장면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거나 미루기만 하고 있다.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이트까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용등급제를 밀어부치던 `열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진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정보통신 전문기자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