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bomul.com 에서 퍼왔습니다. 꽤 조리있는 글이라, 읽어볼만 하군요.

근데, 이런 종류의 평가는 많지만,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하는 대로 넋 놓고 구경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틀림없는 사실일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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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에서는(4)-자살과 자살 사이트>

작성자 : 서정호  (bong@bomul.com) 
작성일 : 2001.02.26  


또다시 인터넷이 문제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사회적 문화를 퍼뜨리는
주범이자 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매체로서, 더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난 성인들이 함께 자살을 하고, 뒤이어 청소년들이 잇달아
자살 사이트의 영향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뒤이어지면서 인터넷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질세라 검찰과 경찰은 물론 총리까지 나서서 자살 사이트와 같은 반사회적
사이트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폐쇄에 두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신문,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자살 사이트의 문제와 인터넷의 폐해를 지적하며, 이제
인터넷이 용인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다.

과연 인터넷이 문제인가?

최근의 자살 사이트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은 과연
인터넷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맺지 않고
진공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인 듯한 가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가정에서 나온 듯한, 자살 사이트가 아니었으면 자살도 없었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즉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자살 사이트의 존재에
있다는 식의 단선적인 시각에 입각한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의문은 자살은 범죄인가 하는 것이다. 


자살과 자살 사이트, 자살 권하는 사회

자살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해왔던 것이다. 빚 때문에, 변심한 애인
때문에 , 생활고때문에, 억울한 누명때문에, 학업 부진 때문에 등등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그 고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한다. 그래서 유언장을 써놓고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다시 말해 자살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대응 방식이란
것이다. 이유없이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그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결단을 하게 된다. 자살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자살을 결행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인터넷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전화로 서로
자살을 의논하고 만날 장소를 약속했다면, 전화 사용의 목적과 용도를 엄격히
규제하고, 그 용도를 벗어나서 사용한다면 처벌해야 하는가?

자꾸만 인터넷이 문제다, 그 때문에 자살을 한다고 몰아가는 것은 결국 현실의
모순에 대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니
그런 모순에 대해 눈감게 하기 위해, 애꿎은 희생양을 골라 두들겨 패면서
집단적인 최면 상태로 몰고가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다고 모두가 자살을 꿈꾸거나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살 사이트가 모두 자살을 권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서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게 만드는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필자가 일방적으로 인터넷의 장점만을 옹호화고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점이나
폐해를 경시하거나 눈감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문제가 터졌다하면 차분히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마치 천지개벽할 일이 터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저 놈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마치 그것으로
문제가 사라지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냄비 속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청소년과 인터넷의 해악 

이런 경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예의 '감수성 예민하고 아직 사리분별이 분명치
않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 역시 다를 바 없다. 

청소년은 청소년이기 이전에 인간이며,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
인격체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격체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다 큰 어른이라고 해서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어른이라고
자살을 하지않는 것처럼. 

문제는 청소년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떤 관심과
배려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고민없이, 단지
그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고, 자살 사이트를 보고 영향을 받아 자살을
결심했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자살 사이트가 문제고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단세포적이고, 정치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그럼 인터넷을 규제하면 자살이 없어질까? 아직 미성숙한 어린이들의 자살이
없어질까? 인터넷이 없었을 때는 왜 청소년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을까?
그럴 때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언제까지 이런 식의 처벌과 금지 위주의, 그리고 개개인의 자율성 확대를 통하기
보다는 국가권력의 힘으로, 공권력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인가? 그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일까? 더구나 국경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성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포르노를 본다고 모두 포르노의 그것처럼 실행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고, 스스로의 자제력과 이성으로 제어하고 판단하고 행동양식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며, 필터링 소프트웨어로
망망대해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것보다 훨씬 현실이적이며
진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지금 수도 없이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면으로 직시하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뜻을 모으는 게 우선일 것이다.

자살을 막는 건 자살을 권하는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 당연한 해결 순서이며, 그
환경 이 인터넷뿐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모순을 눈가리고 아웅하려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살은 범죄인가? 

다소 논점이 벗어나는 얘기일 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 자살은 범죄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살은 범죄가 아니다. 법에 대해 그리 아는 것은 없지만 자살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긴 자살한 사람에게 어떻게
처벌을 가할 수 있겠는가?
자살은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다분히 종교적인 영역에 가까운 문제이다. 여러
종교에서 자살에 대해 명시적으로 죄악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리가 자살을 법과 종교의 영역을 다분히 혼동하면서도 별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자살로 인한 사회적인 충격파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자살은 자살 당사자보다 남아 있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더 큰 고통과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살은 당사자가 선택하는 삶에 대한 태도이자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해 누구는 비난하고 누구는 인정하고 누구는 무심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이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제한하고 강요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쉽게 개개인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바로 사회적인 규범과
제재로 동일시한다. 즉, 내가 싫어하고 문제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한다면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선호를 쉽게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내가 자살을 죄악시한다고 자살한 당사자를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그렇게 자살한 사람을
범죄자나 반사회적인 인물처럼 낙인찍는 것은 분명한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자살을 옹호하거나 자살을 권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남까지 응당 그래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법적으로 처벌을 가해야 하는 당위성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쉽게 혼동하고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살로 인한 충격과 경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법이란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규칙일 뿐이다. 법이 삶의 고민을 대신해줄 수도 없고 해결해주도 없다.

자꾸만 모든 걸 법으로, 규제로, 발본색원으로 해결하겠다는 식의 사고는 자신의
단세포적 사고 방식만을 드러낼 뿐이며,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강압과 통제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억누르던 과거 군사문화적 습성이 의식 밑바닥에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기껏 컴퓨터를 거실로 옮기고 에티켓을 가르치고 아이디를 실명화하는 것이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란 말인가? 괴테가 남긴 불후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될 당시, 이 작품의 내용처럼 자살하는 게 당시 젊은이들에게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청소년 권장도서로 열심히 읽히면서도 그것으로 인한
자살의 우려에 대한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회적 성숙과 내성을 길러야

마치 이런 일은 처음이란 듯, 몰랐다는 듯 호들갑을 떨기 이전에 차분히 왜 이런
현상이 이어지는지 차분하게 사회적인 여론을 모으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그게 진정한 '여론'이 아닌가 싶다. 

손쉽게 법과 권력의 힘에 기대어 눈앞에 보기 싫은 것들을 일거에 없애버리겠다는
무지막지한 사고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인터넷 세상에서는 결코 통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내성을 기르는 것.
그것은 인터넷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제시되며 그 과정에서 네티즌 스스로 성숙해지면서 단점을 걸러내고 장점을
극대화시켜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그 과정은 느릴지라도, 진정 인터넷이
문명의 이기로서 유용한 도구로서 자리잡게 만들고자 한다면 그 길이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오양이나 백양 비디오를 둘러싸고 초기의 흥미위주에서 벗어나 서서히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터넷의 해악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면서 네티즌 스스로
자정 의식을 키워나갔던 것처럼.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고 오로지 장점만 존재하는 그런
이상적인고 '건전'한 인터넷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런 단점들을 최대한
자율적으로 제어하고 충분히 감내할 만큼의 사회적/개인적 성숙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