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출정문>

인터넷 자유를 위한 사이트 파업에 들어가며 

작년 7월, 난데없는 '통신질서확립법'이란 것이 등장하여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건전한 통신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법의 초안에서는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법의 취지와는 달리, 서비스 사업자가 이용자의 
로그파일을 보존해야 하며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때는 지체없이 이를 제시해야 
한다는 등의 황당한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우며 더군다나 이 법의 의도가 뻔히 드러나보이는 이런 황당한 
조항들은 많은 이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고 '속보이는 조항'들은 법 
조문에서는 사라졌다. 그러나 법 조문에서 사라진 '규제'의 망령은 허울좋은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라는 용어와,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또 다른 악법과, 그리고 정보통신부가 맘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부 장관의 고시'등으로 여기저기 분산하여 절묘하게 결합하였다. 
그것도 정부가 주도하여 강제력을 갖는 규제를 '자율'이라는 용어로 포장한 채로.

마치 독재정권 때 자율을 가장하여 자행된 '사회정화운동'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

왜 정부는 이렇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규제하려 하는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이제까지의 '언론 시스템'은 정보가 언론 기관에 집중되어 
일방적으로 대중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전달되는 체제였다. 따라서 권력이 
언론기관을 통제하여, 혹은 언론기관이 그 스스로 권력화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여론을 만들고자 왜곡된 정보를 주입할 경우, 많은 국민들은 이를 진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즉 정보의 생산자와 수용자가 분리되어 있었던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생산자를 장악하여 여론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용자가 정보의 수용자이기도 하지만 생산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여론에 의해 외면받았던 사회적 약자, 부당한 대우를 받아오던 이들의 목소리가 
여과없이 그대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표출되게 되었고, 이제까지 파편화되어 
있던 일반 대중들이 스스로 정보의 생산자가 되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더 이상 권력의 통제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대우차 
노동자들이 무자비하게 경찰에 폭행당한 사례나 군대 내의 성희롱 문제 등은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결코 사회적으로 이슈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 
대중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인 여론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은 통제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이 누렸던 예전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또다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대놓고 통제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라는 좀 더 세련된 논리로 포장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인터넷 규제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인터넷 규제 논리에 대해 우려해 왔고 지속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여 왔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7월 1일부터 
통신질서확립법과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상당수 독소조항들이 그대로 남아 
시행된다. 물론 이 법의 시행 이전에도 인터넷에 대한 규제 사례는 많다. 시행 
이전에도 이러할진대, 이 법의 시행 이후 눈 뜨고 표현의 자유가 유린되는 상항을

우리는 그냥 지켜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껏 이 법안의 독소조항들에 대해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반대 
운동을 벌여 왔다. 정보통신부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에서의 반대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률이나 양심에 비추어 보았을 때 
통신질서확립법이나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분명히 이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법안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 비판적 이성으로, 
양심적 기준으로 볼 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통신질서확립법과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분명 비 합리적인 권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통신질서확립법과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불복종 행위를 '양심적 불복종'이라 
규정하며 이 불복종 운동의 신호탄으로 민주적인 시민 사회단체들에게 사이트 
파업을 제안한다. 

이제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양심적 불복종 행위들에 의해 진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심의 이름으로 거대한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정치, 경제, 사회, 예술,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인류의 정신적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사상을 질식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권력의 힘에 불복종한 정신이 없었더라면, 어떠한 변화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보수적 여론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불복종의 용기가 없었다면, 
인류에게는 어떠한 진보와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이에 인터넷이라는,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매체를 질식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권력의 힘에, 통신질서확립법에 불복종하자. 그것만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지켜낼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